[지식인미나니의 과학현장] AI 시대 융합인재 이렇게 만들어진다…美 대학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이민환 과학커뮤니케이터랩 대표의 현장 취재기 국내 대표 과학 유튜버·커뮤니케이터 지식인미나니 서던캘리포니아대, LACC, 미주리대에서 혁신을 보다
미국 대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그들의 대학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20대 청춘들의 모험 의식이 엿보이는 작품들도 많다. 미국 작품들은 한국처럼 '알바 현장'과 '도서관'이 주요 무대가 아니다. 그래서 좋다. 다른 학과 학생들끼리 모여 자유롭게 실험하고, 서로 소통하는 문화가 부러웠다.
주한미국대사관과의 협업을 통해 지난해 미국 대학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대학 교육과 유학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었다. 인공지능(AI), 과학 분야 초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인재들은 어떤 문화 속에서 배우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위치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와 로스앤젤레스시티 칼리지(LACC), 미주리대학교 컬럼비아캠퍼스를 견학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는 미국 서부지역의 대표적인 명문대로 꼽힌다. 세계 최초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영화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도 USC 출신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로 잘 알려진 라이엇 게임즈를 만든 마크 메릴과 브랜든 벡도 USC를 졸업했다. 노벨상 수상자만 해도 10여 명에 달한다. 과학 현장을 직접 뛰는 필자로서는 꼭 한 번 왔어야 하는 연구 산실인 셈이다.
USC를 투어하던 중 좋은 기회로 USC 공대 '스트레처블 일렉트로닉스(Stretchable Electronics)' 연구실을 방문하게 됐다. 연구실에서 칸이라는 교수를 만났다. 극도로 유연하고, 작은 센서를 개발하는 교수다. 센서는 인체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하는데, 일반인이나 환자, 우주인들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마치 한글 파일 문서를 인쇄하듯이 센서를 아주 얇게 인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체의 특정 부위에다 곧바로 인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나 얇고 가볍고 원하는대로 휘어지기 때문에 팔에 인쇄를 하더라도 별 느낌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칸 교수의 설명이다. 단순히 전기적 신호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트륨, 암모늄, 칼륨, 칼슘 등 피부로 나오는 땀이나 노폐물의 화학적 성분도 측정할 수 있다. 그래서 특정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건강한 사람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센서들로 서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에 이 센서들을 접촉시켰을 때 어떤 촉감인지 알아내는 신호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매우 두꺼운 장갑을 껴서, 손으로 촉감을 느낄 수 없을 때나 팔과 다리에 의수, 의족을 달아야 해서 촉감을 느낄 수 없을 때 이 센서들로 인공 감각을 만들 수도 있다. 가히 노벨상 수상자 배출의 산실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했다. 국내에서 접하지 못 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졌고, 이면의 스토리도 탄탄했다.
LA 대학 탐방이 끝나고 미국 중부에 있는 미주리대학교 컬럼비아캠퍼스를 찾았다. 도시가 아늑한 느낌을 줬다. 미국에서 시골이라고 불리는 곳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공항에서 나와 바깥공기를 마셔보니 한국 시골에서 마셨던 공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미주리대학 투어를 다녔다. 이날은 미국 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다.
미주리대학교 교수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주제는 미국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차이점이었다.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한국 학생들은 다른 국가 학생들보다 조심스럽단다. 그리고 소극적이라고 한다. 수업 중에 먼저 나서서 질문을 하거나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미디어에서만 접했던 이야기를 실제 교육 현장의 교수들에게 들으니 다르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미국 학생들은 미디어에서 봤듯이 정말 의사표현에 적극적일까 궁금했다.
한 교수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경우 수업 시간에 자연스럽게 질문답을 한다고 말했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공유한다는 것. 그렇게 의견이 모이고,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부연했다. 미국 대학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이곳 학생들은 졸업작품이나 과제를 수행할 때 다른 학과 학생들과 협업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게임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학과 학생들이 미술, 디자인, 음악 전공자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칸 교수도 의사들과 협업해 연구를 진행했다. AI, 과학 인재가 쏟아지는 미국의 최대 강점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답은 '융합'이라고 본다. 이제는 전공 영역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이뤄내기 어려워졌다. 학교는 전공이 나뉘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이 해야 하는 과업이 복합적이다. 미국 내 대학교들은 '융합 문화'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점을 몸소 알게 됐다.
더불어 모든 학과 학생들이 캠퍼스 마당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프로그램도 존재했다. 여러 분야, 학과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유명 인사들의 강연도 이어진다. 특히 전과가 자유롭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해 전과가 용이하도록 했다는데, 현재 제대로 정착돼 있었다.
USC에서 만난 학생들 가운데 대다수가 최소 1번에서 2번씩은 전과를 했다고 들었다. 학과를 4번이나 옮긴 학생도 있었다. 그 학생은 여러 학과를 경험하며 다양한 식견을 쌓게 됐을 터.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과 만들지 못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AI 시대 융합인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라는 점을 깨달았던 투어였다. 과학 기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에, 국내에서도 '융합' 인재가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