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웰·루빈·파인만·호퍼…엔비디아 AI 칩 제품명에 담긴 의미는?
엔비디아는 매년 새로운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공개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연례행사인 'GTC 2025' 무대에 올라 GPU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젠슨 황 CEO는 올해 '블랙웰 울트라'를 출시하고, HBM4를 탑재한 '루빈' 시리즈를 내년 하반기 출시한다고 밝혔다. 2028년에는 루빈 시리즈를 뛰어넘을 '파인만(Feynman)' GPU를 출시한다고 덧붙였다.
블랙웰부터 파인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기업들이 활용하는 엔비디아의 AI 칩 제품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이와 관련, 엔비디아는 공식적으로 제품명을 짓는 배경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다.
인류 과학사에 공로를 세운 유명 과학자들의 이름이 최근 출시된 엔비디아의 GPU 아키텍처 제품명이 되고 있다.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따오는 게 관행이 되고 있는 셈이다.
아직까지 엔비디아의 대표 제품으로 불리는 '호퍼(Hopper)' GPU는 컴퓨터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그레이스 호퍼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그레이스 호퍼는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중 하나인 '유니박(UNIVAC)'을 개발했다.
특히 프로그래밍 명령어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코드로 바꿔주는 최초의 컴퓨터 컴파일러를 발명했다. 더불어 컴퓨터 오작동을 설명하는 데 '버그'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선구자적 행보를 이어갔던 호퍼처럼 AI 칩 호퍼도 생성형 AI 혁명을 주도한 반도체로 평가받는다.
최신 AI 칩인 블랙웰도 저명한 수학자인 데이비드 블랙웰에 영감을 받아 지어진 이름이다. 블랙웰은 흑인 과학자 최초로 미국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블랙웰은 게임 이론, 확률 이론, 정보 이론 및 통계 등과 같은 주제에 크게 공헌한 수학자이자 통계학자이다.
하버드대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블랙웰은 추정기법 개선을 위한 '라오-블랙웰 정리'라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게임 이론 및 수리 통계학에 관한 90개 이상의 논문과 책을 집필했다.
엔비디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어머니'로 불리는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이름을 딴 GPU도 출시했다. 유명 시인 바이런 경과 애너벨라 밀뱅크 바이런의 딸로 태어난 러브레이스는 수학자로 성장했다. 인류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평가받다.
엔비디아의 러브레이스 GPU 아키텍처는 데이터센터용 칩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게이머나 개발자가 디바이스에서 AI를 개발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내년 출시 예정인 AI 반도체 루빈 시리즈는 천문학자 '베라 루빈'에서 이름을 따왔다.
루빈은 우주의 암흑물질 존재를 밝혀낸 미국의 여성 천문학자이다. 여성 차별이 심했던 1950년대 당시 루빈은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은하와 자전 속도를 연구했다. 루빈은 지난 1996년 영국 왕립 천문학회로부터 메달을 받았다.
루빈 칩에 이어 2028년에는 파인만이라는 새로운 AI 칩이 공개될 예정이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에서 따온 이름이다. 파인만은 MIT와 프린스턴대에서 공부했으며,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고안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65년 양자 전기역학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파인만은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