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미나니의 과학현장] 14년 전 쓰나미 덮쳤던 日 후쿠시마 '우케도초'에 가다
14년 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가 휩쓸고 갔던 후쿠시마 우케도초등학교. 하교한 1학년생을 제외한 82명의 어린이와 13명의 선생님은 수업에 한창이었다. 당시 교직원들의 신속한 판단으로 모든 학생들이 무사히 대비할 수 있었다.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후쿠시마의 기적'으로도 불린다. 일본 측은 쓰나미의 위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학교 건물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지식인미나니는 '전원 생존의 기록', '일상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보고, 느끼고, 고민해 보고자 우케도초등학교를 찾았다.
바닷바람이 스치는 운동장 가장자리, 벽에 남은 물 자국이 그날의 높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물은 2층 난간 언저리까지 치솟았던 것으로 보인다. 철문과 천장은 찌그러져 있었다. 한쪽 벽에 붙은 '여기까지'라는 수심 표식도 남겨져 있었다.
마치 교정을 박제된 시간으로 만들어 놓은 듯 했다. 그날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 지방 연안을 강타한 거대 지진이 일어났다. 약 40분 뒤 최대 15미터에 이르는 해일(쓰나미)이 해안 마을들을 덮쳤다. 해안선에서 불과 300미터 떨어진 우케도초등학교도 직접적인 위험권에 있었다.
하지만 교직원들은 곧바로 1.5킬로미터 떨어진 내륙의 언덕으로 학생들을 이동시켰고, 물이 도달했을 때 이미 전원이 안전지대에 올라 있었다. 무너지고 떠내려간 것들이 말해주는 것은 파괴의 규모였고, 살아난 출석부가 말해주는 것은 판단의 속도였다.
교정 곳곳은 물리학 교과서의 현장 실험실처럼 변해 있었다. 겉보기엔 느리게 보였던 물이 어떻게 철제 설비를 휘게 만들고, 볼트로 바닥에 고정되지 못한 집기들을 한 방향으로 밀어 넣는지, 잔해의 흐름이 어디서 어디로 역류했는지, 동선과 압력의 지도를 표본처럼 남겨 놓았다.
물은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거대한 부피가 움직일 때, 속도는 곧 질량과 만나 추력이 된다. 그 힘은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을 휙 넘어선다. 현장에서 본 찌그러진 철문과 뒤엉킨 조리실 설비는, 수치로 배우던 ‘유량’과 ‘운동량’이 어떤 실물을 낳는지 설명해 주는 증거였다.
교실 안의 시간도 2011년 3월에서 멈춰 있었다. '1학년 1반', '3학년'을 알리던 표지를 볼 수 있었다. 신발장을 지나 복도 끝 교장실에 이르면 천장은 뜯겨 나가 있고 책은 높은 곳에 걸린 채였다. 학교 바로 앞은 탁 트인 평지다. 주변에 남아 있는 건물이 드문 이유는 단순했다.
바다가 밀고 들어와 쓸고 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울타리만 남은 집터들이 바다와 마을 사이의 경계를 어렴풋이 복원한다. 경계의 허약함은 파도의 한 번의 진입으로 증명됐다. 그날의 성공은 복잡하지 않았다. 흔들림을 위험의 신호로 읽고, 경보를 확인하고, 높은 곳으로 신속히 이동하는 것. 재난학 교과서에 적힌 문장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힘이었다.
우케도 초등학교의 대피는 '가까운 고지, 먼저 간다, 끝까지 간다'는 원칙의 교과서적 구현이었다. 사람을 살린 것은 구조대의 도착이 아니라, 경보와 동시에 시작된 이동이었다. 현장에선 방사선량도 함께 확인했다. 교내 공간선량은 대체로 시간당 약 0.07마이크로시버트, 바다 쪽 공터에서는 약 0.01마이크로시버트로 측정됐다.
수치 자체는 계절과 지형, 기기의 보정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지점에서 즉각적인 추가 위험 신호는 감지되지 않았다. 이는 원전 사고 이후 바람의 방향과 지형이 오염 확산을 불균등하게 만들었다는 지역의 경험적 서사를 뒷받침한다. 같은 현에서 서로 다른 위험이 겹칠 때, 우리는 늘 지도를 더 촘촘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운동장의 수심 표식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여기까지 왔다면, 다음엔 어디까지 준비할 것인가?' 바다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침입하지 않는다. 해저 지형, 만의 형태, 강하구의 퇴적 상태, 조석과 계절풍은 해일의 높이와 속도를 재구성한다. 이 때문에 ‘평소에 정한 합리적인 탈출 경로’는 현장에서의 ‘즉흥적 판단’과 짝을 이뤄야 한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계획은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돕고, 현장의 즉흥성은 복잡한 변수를 뚫고 실제의 출구를 찾아낸다. 그 사이, 마을은 느리게 복원되고 있었다. 새로 지어진 신사, 나뉘어 표식이 된 필지, 언젠가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울타리들. 그러나 복구의 속도는 기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건물이 다시 서도, 물이 남긴 선은 지워지지 않는다. 과학이 할 일은 이 흔적을 표본처럼 읽어 다음 위험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경보 체계와 대피 훈련, 지형에 맞춘 고지 지정, 학교와 가정의 행동요령은 모두 그 목적을 위해 설계된다.
우케도 초등학교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간명한 진실은 이것이었다. 기적은 우연이 아니었다. 준비의 다른 이름이었다. 벽의 수심선은 파괴의 높이를 말해주고, 비어 있는 출석부의 빈칸은 없었다는 사실이 살아남은 수업의 내용을 말해준다. 그날의 선택과 오늘의 기록은 한 문장으로 수렴했다. 재난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즉각적인 판단과 신속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서나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일상의 일부를 ‘준비’로 바꾸는 일이다. 아이들과 걷는 등굣길에 가장 가까운 언덕을 확인하는 일, 집과 학교의 대피 경로를 입으로 외워보는 일, 경보가 울리면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이도록 연습하는 일. 우케도 초등학교의 교실이 가르쳐 준 과학은 성실했고, 그 성실함이 사람을 살렸다. 다음 경보가 울릴 때, 우리의 발걸음이 그 수업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