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논밭인데, 뭐가 자라는지 몰라?"…교수들과 대화하다 건져 온 300억원 AI 아이디어

2025-09-05     유형동 수석기자
찰리 우 오차드 로보틱스 CEO. (사진=오차드 로보틱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이들 모두 세계적 기업을 일군 인물들이자, 대학교 중퇴자들이다. 미국에선 명문대를 중퇴하고 창업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선 전국 수석부터 3058등까지 대부분이 의대를 진학한다. 이후 의사가 되기 위해 학교와 병원에 열정을 쏟는다. 미국 인재들이 창업을 통해 뛸 때, 한국 인재들은 의사가 되기 위해 달리고 있는 셈이다. 반면 미국에선 빌 게이츠와 같이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에 성공한 선배 기업인들의 길을 무작정 따라가기 위해서다 아니다. 중퇴하더라도 충분히 창업에 뛰어들고,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페이팔 공동 설립자인 피터 틸이 운영하는 '틸 펠로우십'이 대표적이다. 

틸 펠로우십은 창업을 원하는 대학 중퇴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3세 이하의 중퇴자들이 지원할 수 있으며, 선정되는 청년들에게 2년간 20만 달러(약 2억 8000만원)의 보조금이 주어진다. 20대 초반 청년들이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수준의 자금이다. 

찰리 우 오차드 로보틱스 CEO. (사진=오차드 로보틱스)

그래픽 디자인 도구 개발사 피그마 CEO를 비롯 가상화폐 이더리움의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도 틸 펠로우십 출신이다. 이러한 사례가 축적되고 가운데 최근 한 기업이 틸 펠로우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공 궤도에 올라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AI 농업 기술 기업 오차드 로보틱스(Orchard Robotics)를 창업한 찰리 우(Charlie Wu) 최고경영자가 그 주인공이다. 찰리 우 CEO는 코넬대를 중퇴하고 2022년 오차드 로보틱스를 설립했다. 찰리 우 CEO는 코넬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는 동안 농업과 기술을 접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그는 세계적인 교수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큰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이 자신들의 논밭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오차드 로보틱스는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과일을 재배하는 농부가 작물을 보다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진=오차드 로보틱스)

미국 내 대형 농장들은 여전히 농장 운영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수동 샘플링에 의존하고 있다. 농부들은 자신이 기르는 작물 가운데 극히 일부만 골라 검사를 하고, 이에 따라 농약의 양을 정한다. 수확을 위해 직원을 고용하는 것조차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와 관련 찰리 우 CEO는 "농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데이터 문제이며, 데이터는 모든 농업 관련 의사 결정의 근간이다"라며 "하지만 정확하고 실행 가능한 데이터가 부족해 병목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오차드 로보틱스가 개발한 AI 기반 카메라 시스템은 트랙터나 농장 내 차량에 탑재된다. 카메라가 수백만 장의 이미지를 촬영하고, 수집된 이미지는 AI에 의해 크기, 색상, 상태 등이 분석된다. 해당 데이터는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에 업로드된다. 

(사진=오차드 로보틱스)

AI는 추가 비료 공급, 가지치기, 솎아내기 등 현재 농부가 작업해야 하는 사항을 안내한다. AI는 농장의 의사 결정을 자동화하고 최적화해 가장 수익성 있고 효율적이며 지속 가능한 작물을 생산하도록 돕는다. 오차드 로보틱스의 기술은 이미 미국 최대 규모의 사과 및 포도 농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들어 블루베리, 체리, 아몬드, 피스타치오, 감귤류, 딸기 재배 농가에도 기술을 보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 내 농가와 투자자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오차드 로보틱스는 최근 시리즈 A 투자 라운드에서 2200만 달러(약 3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사진=오차드 로보틱스)

이번 투자 유치는 콰이어트 캐피털과 샤인 캐피털이 주도했으며, 제너럴 캐털리스트, 콘트라리 등 세계적인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오차드 로보틱스는 연말까지 팀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샌프란시스코에 새로운 사무실을 열어 미국과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고객 기반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찰리 우 CEO는 "미국 농장을 자동화하는 AI 농부를 구축했다. 오차드 로보틱스의 사명은 농업을 다시 수익성 있고, 효율적이며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