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부패 고리, AI로 끊는다…알바니아, 세계 최초 'AI 장관' 임명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자리 잡은 알바니아는 국토 면적(약 2.9만㎢)에 인구 277만 명인 소국이다. 경상남도·경상북도를 합한 규모의 면적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엄혹한 공산주의 통치를 겪었다. 1990년대 초반 40년 넘는 공산주의의 억압 속에서 벗어났다.
시장경제로 전환됐으나 국민들은 먹고사는 문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부정부패가 심한 데다 실업률도 높다. 알바니아는 2023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8575달러(약 1197만원)에 불과한 유럽 최빈국으로 꼽힌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을 두고 극심한 부정부패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지난 몇 년 간 집권당의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몇 차례나 이어지기도 했다.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알바니아는 최근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가상 인물 '디엘라'를 공공 입찰 감독 장관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디엘라'는 알바니아어로 '태양'을 뜻한다. AI 장관 '디엘라' 도입을 주도한 건 지난 5월 4연임에 성공한 에디 라마 총리다. 라마 총리는 2013년 첫 집권 이래 12년, 앞으로 4년 더 총 16년간 알바니아를 이끌게 됐다. 라마 총리는 '2030년까지 유럽연합(EU) 가입'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EU 가입을 통해 경제 성장, 부패 척결 등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공공 행정 분야의 부패를 척결하는 것은 알바니아의 EU 가입에 있어 핵심 조건 중 하나다. AI 장관을 도입하는 건 민관유착·부정청탁 등 공직 사회를 좀 먹는 악습을 뿌리 뽑아 공공 행정 분야를 혁신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에디 라마 총리는 "디엘라는 물리적인 자리에 참석하지 않지만, 가상으로 구성된 내각 구성원"이라며 "공개 입찰에서 부패가 없도록 도움이 될 것이며, 더 빠르고 투명하게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엘라는 올해 1월 공식 전자 행정 플랫폼 'e-Albania'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통 알바니아 의상을 입은 여성의 모습으로 구현된 '디엘라'는 공식 전자 행정 플랫폼에서 가상 비서로 일하며, 디지털 문서 발급과 행정 서비스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간 3만 6000건 이상의 디지털 문서 발급을 지원했고, 약 1000건의 온라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또한 디엘라는 정부가 민간 기업과 맺는 공공 입찰 등을 검토하며, 제안의 장점을 평가하는 역할도 맡는다. 디엘라와 관련,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AI 장관으로서 공식적인 지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