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몬의 이면 보여준 '파워디지몬 더 비기닝'
루이와 웃코몬 관계서 인간과 AI의 미래를 봤다
이용자의 바람직한 인공지능 사용법 요구돼
"찾아라 비밀의 열쇠, 미로 같이 얽힌 모험들, 현실과 또 다른 세상, 환상의 디지털 세상"
1990년대생들은 한 소절만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알아챌 것이다.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응원곡 같은 노래다. 2000년대 KBS에서 방영한 일본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주제가이다. 1990년대생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만화로 시작해 게임, 극장판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됐다. 특히 아구몬, 파닥몬 등 디지몬 굿즈도 소위 '초딩'들의 위시리스트로 자리 잡기도 했다. 최근 '극장판 파워 디지몬 더 비기닝'이 개봉했다. 이미 성인이 된 90년대생들에게는 잊혀진 추억의 애니메이션이겠지만, 또 다른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30대가 된 본 기자가 20여 년 만에 디지몬을 만나기 위해 티켓을 예매했다.
이번 극장판에서는 새로운 캐릭터와 업그레이드된 퀄리티의 작화를 만나볼 수 있었다.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으로 관람을 계획했지만, 인공지능(AI)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새로운 의미를 엿볼 수 있게 됐다. 인류와 AI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AI처럼 학습하고 훈련받는 디지몬
디지몬 이야기와 AI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그러나 디지몬에서 다루는 주제와 성장 시스템에서 AI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디지몬 시리즈는 컴퓨터 네트워크와 디지털 세계에서 활동하는 가상 생명체들을 다룬다. 이는 현실 세계와는 분리된 디지털 세계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AI 역시 디지털 세계에서 작동하며 가상 현실과 관련된 기술과 개념을 활용한다.
특히 디지몬은 진화를 통해 더 강력한 형태로 성장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이는 일부 AI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머신러닝 및 딥러닝 학습과 유사한 개념이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려고 시도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진화하는 것과 닮았다.
또 컴퓨터 프로그램과 관리 측면에서 디지몬 트레이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디지몬을 관리하고 훈련시킨다. 이는 AI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가 인공지능을 디자인하고 조작하는 방법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루이가 좋아할 줄 알았어"…'웃코몬'과 'AI 윤리'
그동안 디지몬은 '우리의 영원한 친구', '악당과 싸우는 선한 존재'로 표현돼 왔다. 이번 극장판에서의 디지몬은 기존과 조금 다르게 묘사되는 듯싶다. 디지몬이라는 존재에 대한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내용도 담겼다. 이번 작품에서는 최초의 선택받은 아이 '루이'가 등장한다.
루이는 과거 병상에서 힘겹게 투병 중인 아버지와 그를 간병하는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경제활동과 가사노동, 간병에 지쳐 루이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학대를 받아오는 등 불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루이는 '웃코몬'과 만나게 된다.
웃코몬은 루이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던 루이는 "나를 지켜줄 친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한다. 웃코몬은 이를 위해 자신의 능력 '라이어 드림'을 이용해 주변인들이 루이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아버지에게 강제로 에너지를 주입해 병상에서 일으켜 세워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어머니 역시 루이가 바라는 것처럼 자상한 모습으로 변하면서 행복한 삶으로서 전환기를 맞는다. 그러나 루이는 성장하면서 점차적으로 이러한 생활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웃코몬에 의해 자신이 느꼈던 행복이 조작된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루이는 자신은 이런 소원을 빈 것이 아니라며 웃코몬을 탓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루이는 자신의 디지바이스를 야구배트로 박살 내던 중 한쪽 눈을 실명한다. 웃코몬은 다친 루이에게 자신의 눈을 끼워 줬다. 루이가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웃코몬의 눈을 이식받은 루이는 흉측하게 변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더욱 분노해 웃코몬에게 "난 행복하지 않아"라며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웃코몬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렇다면 소원을 빌었던 루이, 루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모두 배제해 결과만을 중요시 여겼던 웃코몬, 누구의 탓을 할 수 있을까? 해당 에피소드를 보면 결과와 성능을 중심으로 개발되는 AI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술의 진보가 먼저냐, 혹은 인간의 통제와 윤리 측면을 고려하며 개발해야 한다라는 골자의 'AI 윤리 논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디지몬처럼 누구나 AI 비서를 휴대할 미래 온다
파국을 맞은 루이와 웃코몬의 관계를 보자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조금 더 대화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루이와 웃코몬의 관계를 인간과 AI에 대입해 보자.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AI에게 명령을 내리지만 AI는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에 가깝도록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원치 않는 결과를 제공하기도 한다.
'파워디지몬 더 비기닝'에서 웃코몬은 10여 년이 지난 뒤 루이 앞에 다시 나타나 세계적 재앙 수준의 커다란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지만 이내 루이와 다시 대화를 하게 되면서 화해를 한다. 루이와 웃코몬은 서로 잘못했던 부분에 대해 사과한다.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이러한 상황처럼 인간이 자신의 실수를 AI나 기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미래가 올 수 있다. 이러한 미래를 우려해 여러 전문가들은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강조한다. △책임감 있는 사용 △윤리적 의사결정 △비판적 사고 △협력적 접근 △유연성과 적응성 △개인 및 사회적 책임 인식 등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인간이 AI와 상호작용하면서 건설적이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원칙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적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처럼 자의식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내다보고 있다.
인간과 디지몬의 관계처럼 미래에는 각자의 AI를 소유하고 학습시키면서 일상생활에서 AI가 도움을 주는 일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미래를 앞두고 인류와 AI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 '디지몬'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볼 법하다.
AI포스트(AIPOST) 나호정 기자 hojeong9983@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