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과학 유튜버 지식인미나니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 17'이 개봉 첫 주말 동안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프랑스 칸영화제와 미국 오스카를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기도 하고, 유명배우 로버트 패틴슨과 마크 러팔로가 출연한 점도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유발했을 것이다.
영화 미키 17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이 2022년 발표한 소설 '미키 7'을 각색한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미키는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복제인간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키 17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혹은 이미 관람을 했더라도 꼭 한 번 고민해봐야 할 이야기가 있다. 국내외 과학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는 국내 대표 과학 유튜버 지식인미나니가 미키 17을 관람한 이후 깊이 고민했던 문제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인간 복제 기술의 가능성과 윤리 문제, 극한의 우주 환경에서의 생존 문제, 고도의 AI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작품 속 미키에게 있어 '복제'는 일상이다. 사고나 임무 중 목숨을 잃더라도, 기존에 백업해 둔 기억을 새로운 육체에 주입하면 다시 살아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복제'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1996년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탄생한 양 ‘돌리’는 약 270번의 시도 끝에 겨우 복제에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에도 소, 돼지, 말, 개 등 다양한 동물 복제가 이뤄졌다. 그러나 인간을 복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기술적·윤리적 문제로 아직 금기 영역에 가깝다. 게다가 복제 동물들은 조기 노화나 면역계 이상 등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를 보면 영화처럼 ‘복제→신체 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기억 이식'이다. 몸만 복제하는 게 아니라, 죽기 직전의 기억까지 새 몸에 옮긴다. 이에 주인공 미키는 ‘나’를 계속 이어간다고 주장한다.
이 설정은 매우 흥미롭다. 실제 가능한 이야기일까. 지난 2018년 바다달팽이 실험을 예로 들 수 있다. 전기 자극을 받은 달팽이의 RNA를 다른 달팽이에 주입했더니, 마치 전기 자극을 받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기억 이식의 가능성’이라고 화제가 됐다. 그러나 달팽이 신경계와 인간 뇌의 복잡성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다.
결국 인간의 모든 기억과 인격을 통째로 백업해 다른 몸이나 컴퓨터로 옮기는 건 아직은 SF적 상상에 가깝다고 본다. 하지만 ‘마음 업로드(Mind Uploading)’ 개념은 일부 뇌과학·컴퓨터공학계에서 꾸준히 이론적 가능성이 논의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만약 인간 복제가 실제로 가능해진다면, 윤리·사회적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복제인간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설정하고, 그들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까. 더 나아가 작품 속 ‘미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등장하면 생명의 존엄성 자체가 흔들릴 우려도 있다. 그래서 대다수 국가가 인간 복제 연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종교적, 도덕적, 그리고 과학적 안전성 관점에서 ‘시기상조’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키 17에서 가장 매력적인 설정 중 하나는 인류가 지구를 떠나 얼어붙은 외계 행성 ‘니플하임(Niflheim)’에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선 달과 화성, 더 멀리 소행성대나 태양계 외곽을 탐사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우주 방사선, 극한의 온도, 미세중력 환경 등이 모두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비행에 ‘방사선 노출’, ‘고립’, ‘지구로부터의 거리’, ‘미세중력’, ‘폐쇄적·혹독한 우주환경’을 가장 큰 5대 위험으로 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인구 폭발이나 자원 고갈, 혹은 기후 위기 같은 심각한 시나리오가 벌어진다면,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할 필요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가까운 예시로 ‘화성’은 대기가 거의 없고 물은 대부분 얼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태양광이나 핵에너지를 활용해서 생명유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지 자원 활용(ISRU)으로 대기에서 산소를 뽑아내며, 극지 얼음을 녹여 물을 확보하려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완벽히 구현된다면 작품 속 주인공처럼 극한의 행성 환경에서도 일정 규모의 ‘식민지’를 만들 가능성은 조금씩 열리고 있다.
다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건 기술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엄청난 도전 과제이기도 하다. 우주 식민지 개척의 성패는 주로 ‘극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가 결정한다. 이에 화성의 얼음에서 물을 얻고 전기분해로 산소와 수소를 분리해 연료전지로 활용한다든지, 현지의 흙을 3D 프린팅해 거주 모듈을 만드는 시나리오도 연구되고 있다.
방사선 차폐나 극한 온도 제어 문제만 잘 해결한다면, 소수 인원이 장기간 거주하는 기초적인 식민지는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더불어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의식과 자율성을 갖게 된다면, 법적으로 ‘인격체’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논쟁이 벌써부터 생기도 있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로봇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유럽의회가 ‘지능형 로봇에 전자 인격을 줄 수 있다’는 결의안을 논의했던 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는 아직 이르다는 반응이다. AI가 진짜 ‘의식’을 가졌는지조차 불확실하고, 인간이 만든 도구에 굳이 법적 책임이나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SF에서 그려지듯, 고도로 발달한 AI와 인간 복제인간이 공존하는 미래가 온다면, 서로의 정체성과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머지않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의 핵심 갈등은 죽을 때마다 복제된 미키가 정말 ‘같은 미키’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기억이 이어져 있다면 동일한 인격체’라는 이론을 내놓은 바 있다. 내가 과거에 한 일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현재의 의식 속에 이어진다면, 몸이 달라도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미키17과 미키18처럼 두 복제체가 동시 존재하며 같은 기억을 공유한다면, 어느 쪽이 진짜일까.
존 로크의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관점을 바꿔보자. 똑같은 몸을 유지해도 기억을 완전히 잃으면 과연 예전의 ‘나’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치매 환자나 해리성 기억장애 사례를 보면, 법적·생물학적으론 같은 사람이지만, 주변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로크의 관점에 따르면, 기억이 단절되면 이전의 ‘나’와 현재의 ‘나’가 같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토머스 리드 등은 ‘기억은 자기 동일성의 증거일 뿐 원인은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자아를 ‘뇌가 스스로를 모델링한 결과물’로 파악한다. 기억과 감정, 신체감각, 사회적 관계가 서로 얽혀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억 일부가 사라져도 성격이나 습관이 남는다면, 어느 정도 동일성을 유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자아 정체성은 단순히 ‘있다, 없다’로 구분하기 어려운 연속적 스펙트럼에 가깝다고 본다. 복제된 미키가 이전 미키의 기억을 이어받아 ‘나는 계속해서 나다’라고 믿더라도, 실제론 조금씩 다른 경험을 쌓아가며 새로운 정체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욱 복합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정리해보면, 영화 '미키 17'과 소설 '미키 7'이 던지는 주제들은 SF적 상상력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도 매력적인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결국 '미키 17'과 '미키 7'은 단순히 ‘복제인간 이야기’나 ‘우주 모험’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복제 몸에서 깨어난 ‘나’를 과연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이 먼 우주로 진출하는 날이 온다면, 그곳에서 우리 인간성은 어떻게 변해갈까.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혹은 관람했다면 한 번 쯤 고민해볼 문제다.
AI포스트(AIPOST) 이민환 과학커뮤니케이터랩 대표 skddl0514@gmail.com

